안녕하세요. GDI의 H입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도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높아진 관심만큼, 창업하는 스타트업의 수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스타트업계에 대해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특허 포트폴리오를 체계적으로 갖추어 나가는 (GDI를 제외하고)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름 원칙을 정해 특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나가는 바람직한 스타트업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INVESTING IN PATENTS: EVERYTHING STARTUP INVESTORS NEED TO KNOW ABOUT PATENTS” 라는 책의 내용을 일부 소개하고,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나누어 볼까 합니다. 책 내용 자체는 지식재산권 분야에 근무하는 분들에게는 새로운 내용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책 내용이 ‘스타트업’의 특허라는 특수한 환경에 맞추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INVESTING IN PATENTS: EVRYTHING STARTUP INVESTORS NEED TO KNOW ABOUT PATENTS의 표지[1]
특허는 돈만 잡아먹는 괴물?
미국에서 특허 출원 하나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적으로 $5,000라고 합니다. 이렇게 비용을 들인 특허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정형화된 이론이나 도구로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시장의 거래 가격을 생각해 본다면 약 $200,000~$500,000가 평균 가격 정도입니다. 물론, 스타트업의 비즈니스와 딱 맞아 떨어지고, 무효자료에 의해 무효가 될 가능성이 낮은 잘 가공된 특허가 있다면, 해당 특허가 적용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이익에서 25% 정도의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2].
이 밖에도 특허는 여러 비즈니스의 협상, 대표적으로 경쟁사 또는 관련 회사와의 라이센싱 협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협상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침해하고 있는 특허를 100개를 가진 회사라도, 우리가 해당 회사가 침해하고 있는 특허 10개를 가지고 있다면, 상대방은 쉽사리 침해 소송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도 우리의 특허를 침해하고 있으니까요.
책에서는 현존하는 95%의 특허가 쓸모가 없다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을 합니다. (이는 미국에서 등록된 특허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만약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상대적으로 시장이 작고, 침해 배상액이 작은 대한민국의 등록 특허를 기준으로 한다면 0.5%도 안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특허로 수익은커녕, 비용만 잡아먹는 것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런 점을 본다면, 특허는 돈만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충분히 불릴 수 있네요.
쓸모 없는 특허가 양산되는 이유
이렇게 쓸모 없는 특허가 양산될 수 있는 원인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분류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제안된 발명 내용 자체가 현재 비즈니스를 잘 담지 못해, 등록된 특허가 갖는 권리범위가 비지니스적으로 가치 없는 기술에 대한 권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 등록된 특허가 등록될 발명이 아님(명백한 선행 기술이 존재함)에도 운좋게 등록되어서, 권리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일 수 있습니다.
셋째, 발명 자체는 좋았지만, 특허 출원 과정에서 쓸모 없는 특허가 되어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는 명세서 작성이 잘 못 되거나 출원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보정이 적절치 않아 가치 없는 특허로 등록되는 경우 입니다.
이런 일련의 이유로 인해 쓸모 없는 특허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하지만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여 실제 돈을 버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특허로 돈을 버는 기업이 있나?
IBM은 특허를 매각하거나 라이센싱하여 매년 수 조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난2015년 3월에는 IBM은 Linkedin에게 800여개의 특허 출원과 등록된 특허를 매각한 바 있습니다[3]. Microsoft도 휴대폰 관련 특허를 통해 Android 스마트폰 제조사들로부터 많은 로열티 수익을 거두고 있습니다. 최근 Microsoft는 1500개의 특허를 샤오미에게 매각하기도 했습니다[4]. 잘 구축된 특허를 쌓아가는 기업들과 쓸모 없는 특허를 쌓아가는 기업들의 차이는 무엇 일까요?
가장 큰 차이점은, 특허 불량 기업들과 달리 특허 우량 기업들은 검증된 방법과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은 IBM이나 Microsoft와 같은 특허 우량 기업들처럼 막대한 자금과 연구 인력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걸까요? 저는 소수의 특허를 올바른 방법으로 집중적으로 관리/개발 한다면, 스타트업이 가치 있는 특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내는 일이 불가능한 것 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IBM에서 Linkedin으로 매각된 특허의 기술 분야를 보여주는 PatentScapeTM[3]
특허 포트폴리오 구성#1: 특허 포트폴리오의 로드맵
특허 포트폴리오의 전체 로드맵을 구성할 때, 스타트업은 기술적 측면과 비즈니스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먼저 기술적 측면으로 스타트업은 현재 개발하고 있는 기술과 앞으로 개발할 기술에 관한 특허를 확보해야 합니다. 경쟁사가 현재 개발하고 있는 기술과 관련되어 있거나 앞으로 개발할 것으로 보이는 기술에 관한 특허도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스타트업은 현재 자사의 제품/서비스를 보호할 수 있는 특허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경쟁사의 제품이 침해하는 특허를 보유해야 합니다. 기술의 발달 과정을 예측하는 것 보다 비즈니스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측이 어려운 만큼 성공 시 가치도 큽니다.
특히, 경쟁사 제품/서비스를 직접적으로 타겟팅할 수 있는 특허는 경쟁사와 분쟁이나 여러 비즈니스 협상에서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주요 경쟁사의 특허 출원과 제품/서비스에 대해서 분석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권장됩니다. 실제로 많은 대기업들은 경쟁사 제품/서비스를 직접적으로 타겟팅하는 특허 출원을 합니다. 스마트폰 특허 전쟁이 한창일 때, 변리사들 사이에서는 애플의 휴대폰 기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삼성전자를 대리하는 변리사이고, 삼성전자의 휴대폰 기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LG전자를 대리하는 변리사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었습니다.
특허 포트폴리오 구성#2: 린 스타트 업 방법에 따른 특허 출원
비즈니스 측면에서 가치 있는 특허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입장이 되어 기술을 바라보고, 소비자의 의견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비즈니스를 특허 출원에 반영해야 합니다. 이는 Lean Start Up 방법론에 따라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에게는 필수적인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즉,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소비자에게 선보이고,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면서, 변경되는 제품/서비스를 보호할 수 있는 특허 출원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제품/서비스의 출시 전 또는 출시와 동시에 출원되는 스타트업의 첫 번째 특허에서 너무 많은 내용과 범위를 다루는 것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스타트업의 첫 번째 특허 출원 당시에는 많은 것이 불명확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출원 당시 작성되는 특허 문서(명세서)에서 많은 내용을 다루려고 한다면 앞으로 개발되거나 출시될 제품/서비스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작성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이러한 예측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제품/서비스가 발전되기 마련입니다. 또한, 많은 경우에는 제품/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이 기술적 인사이트에 대한 암시/동기를 제공합니다.
시장 상황 또는 소비자 반응에 따라 변경된 제품/서비스를 보호할 수 있는 특허 출원을 하려고 할 때, 처음 출원된 특허 출원이 변경된 제품/서비스에 대한 암시나 동기를 기재하고 있고 공개된 상태라면, 처음 출원된 특허 출원 문서(명세서)는 심사관에 의해 선행자료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자사의 특허 출원 문서(명세서)에 기재된 내용에 의해 특허 출원이 거절되거나 무효 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따라서 스타트업은 첫 번째 특허 출원 당시에는 제품/서비스의 중심 특징 위주로 출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선행 기술과 구별되고, 진보성이 있는 특징은 꼭 포함해야 합니다. 이마저도 기재하고 있지 않다면 해당 특허 출원은 특허 등록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허 포트폴리오 구성#3: 출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의 구분
특허 출원은 상대방이 내 기술을 사용할 때, 이를 발견하고 증명할 수 있는 기술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등록된 특허의 기술이 상대방에 의해 사용됨을 증명해낼 수 없다면, 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등록된 특허를 통해 상대방으로부터 로열티를 받거나 이를 다른 사람에게 매각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경쟁사가 등록된 특허의 공개 문서를 보고 자신의 제품/서비스를 개량하더라도 바라만 보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완제품을 통해 증명할 수 없는 화학 공정이 등록 특허의 권리 범위라면, 완제품만을 볼 수 있는 특허권자는 특허 기술을 사용하는 회사를 찾아낼 수도 없습니다. 설사 경쟁사가 해당 기술을 사용한다는 정보를 들었더라도, 이를 법정에서 증명해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특허 출원 전에, 출원될 기술이 사용 시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사용을 증명해낼 수 있는 기술인지 검증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특허 포트폴리오 구성#4: 대리인과의 관계
스타트업이 대형 특허법률사무소/특허법인을 대리인으로 선임하는 것은 신중히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형 특허법률사무소/특허법인에게는 이미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큰 기업들이 있기 마련이고, 스타트업의 출원은 이들의 출원 보다 우선 순위가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형 특허법률사무소/특허법인에서 스타트업의 특허를 직접 처리하는 사람은 스타트업이 상담을 받은 유명한 변리사가 아니라 어느 조그만 방에서 드러나지 않게 일하고 있는 경력이나 능력이 부족한 변리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일한 원리로 보면, 여러 사무소를 선임하기 보다는 하나의 사무소와 지속적으로 협력하여 해당 사무소의 중요 고객으로 자리 매김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스타트업이 상대적으로 작은 사무소를 선임하고, 해당 사무소에서 진심을 다해 특허 출원을 대리해주더라도, 특정 분야에 대한 경험 부족과 전문지식 부족 등으로 적절한 서비스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허 출원에 대한 경험이 많거나 특허 출원과 관련된 업계에 대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지인이 있다면 대리인 선정 전에 적절한 대리인을 추천 받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대리인을 선임하면서, 협상을 통해 비용을 지나치게 낮추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변리사/변호사 등 법조 전문직은 어떤 사무를 처리하면서 정해진 가격을 받거나 시간에 따라 비용을 청구합니다. 따라서 법조 전문직에 대해 시간을 파는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변리사에게 시간은 곧 제품이고, 자원입니다. 지나치게 낮은 수가가 확정된 출원이 있다면, 담당 변리사는 낮은 수가만큼의 시간만을 투자하여 업무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변리사는 시간을 파는 직업이라고 이야기됩니다[6]
특허 포트폴리오 구성#5: 우선심사를 통한 조기의 특허권 확보
투자 유치 또는 M&A시에는 10개의 출원보다 등록된 특허 하나가 월등히 큰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출원 중인 특허에 대한 등록 가능성은 불확실한 것이고, 등록과정에서 특허의 권리범위는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으므로, 투자자가 출원 중인 특허에 큰 가치를 부여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부 중요 기술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특허권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우선심사에는 적지 않은 관납료와 대리인 비용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모든 출원이 아닌 중요 출원 중 일부에 대해서 빠른 시일 내에 등록을 받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또한, 아직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에 특허를 등록하여 권리범위를 확정하게 되면 상대방이 이를 쉽사리 회피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 특허의 등록 전에 분할 출원 등을 통해 해당 기술에 대한 출원 계속 상태(청구항을 보정하여 권리 범위를 변경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허도 우리의 제품/서비스를 거들 뿐입니다[7]
마치며
스타트업은 항상 시간과 자본이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스타트업이 시간과 자본을 소비하여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다는 것은 굉장한 투자입니다. 개인적으로 모든 스타트업이 특허 출원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스타트업 유니콘 중 30%는 특허를 하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8].
그러나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이 자신의 제품/서비스와 관련된 좋은 특허를 확보하고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해당 기업의 가치는 월등히 높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또한, 큰 자본을 가진 후발주자가 스타트업이 점유하고 있는 시장에 진입할 때, 훌륭하게 설계된 특허 포트폴리오는 좋은 방어막이 될 수 있습니다. 적절하게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지 못한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언젠가는 특허를 대량으로 구입해야 하는 시기를 직면하게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Linkedin[3], Facebook, 샤오미가[4] 좋은 예입니다.
따라서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이라면 특허 포트폴리오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시고, 특히 해외 진출을 계획하는 스타트업이라면 특허 분쟁에 대해 항상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명심할 것은 훌륭한 제품/서비스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합니다. 평범한 특허를 가지고 성공한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훌륭한 특허를 가지고 실패한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보다 가치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출처
[3]https://www.innography.com/public/upload/files/general-files/Innography-Patent-Market-Tracker.pdf
[7] 슬램덩크 중 강백호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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